'일상스런 수술로 사망할 수 있을까' 의문 지속

앤디 워홀

팝 아티스트 앤디 워홀. 22일은 그가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지 30주년이 되는 날이다. 그는 1987년 2월 21일 뉴욕의 한 병원에서 담낭 수술을 받고 다음 날 페니실린 알러지 반응으로 상태가 악화돼 심장 발작으로 사망했다. 그의 나이 58세.

그가 사망하자 여러 신문은 일제히 의문을 제기했다. 당시 타임지는 "어떻게 미국의 가장 유명한 팝 아티스트가 대도시의 일류병원에서 일상적인 담낭 수술을 받고 사망했을까?"라며 의구심을 표출했다.

'일상적인 수술'에 대한 여러 견해가 그의 사망 며칠 후부터 30주년이 되는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반복 재생산되고 있다.

의료 역사학자이자 퇴임한 외과의인 존 라이언 박사는 4년 전 은퇴한 후 워홀의 의료기록을 파헤쳐왔다. 그는 태평양 연안 외과 연합(the Pacific Coast Surgical Association)의 정례 모임에서 그 결과물을 발표했다. 이에 따르면 워홀의 죽음은 '상당히 놀랄만한 사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는 워홀의 마지막 수술을 집도한 외과의가 거의 15년 동안 담낭 이상의 환자 및 워홀과 동일한 병력이 있는 가족을 치료해왔다고 했다. 워홀의 아버지도 워홀이 태어난 1928년에 담낭제거 수술을 받았다.

워홀은 사망하기 최소 한 달 동안 계속 아팠었지만 강도가 심한 작업 활동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병원 입장에서 보면 좋은 환자가 아니었다. 워홀은 입원을 해야 됨에도 재택치료를 받겠다고 주장했다.

부존 토르부자너슨 박사는 그의 간청을 거절했고 3일후 워홀이 마침내 수술대 위에 누웠을 때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는 이란 왕을 치료한 것으로 유명한 외과의다)  그는 개복을 했고 담낭 괴저를 발견했다. 담낭을 제거하자 담낭이 조각조각 떨어졌다. 집도의는 문제에 봉착했다. 워홀의 복강근육이 분리되어 있었고 그동안 워홀은 탈장으로 고통받아왔다. 그는 가장 까다로왔던 담낭 제거를 통해 워홀의 복강벽을 수리하는 것이외의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라이언 박사는 조사를 통해 다음을 알게 되었다. 워홀은 탈수상태였고, 평생 그를 괴롭히던 음식을 먹고 삼키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 거의 먹지를 않아서 매우 쇠약했다. 워홀은 몇 년 동안 매일 각성제를 복용했고, 1968년의 총상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했다. 분노한 추종자 발레리 솔라나스의 총격으로 총상을 입은 워홀은 응급실에서 사망선고까지 받았었고 장기 아홉 군데가 손상되었다.

수술은 잘 진행된 듯 보였다. 워홀은 그날 저녁 전화를 하면서 병실에 있었고 개인 간호사가 오전 4시에 확인하러 들어갔을 때도 괜찮아 보였다. 그러나 약 2시간 후, 그녀는 온몸이 파래지고, 신체 반응이 없는 워홀을 발견했다. 모든 회복노력은 실패로 돌아갔고. 부검 결과 그의 사망원인은 심실 세동이었다. 워홀의 심장이 멈춘 것이다.

외과수술 이후의 갑작스러운 사망을 연구해온 스튜어트 레드먼드 월쉬 박사는 이것이 놀랄만한 사건은 아니라고 밝혔다. 아픈 몸이 큰 수술의 트라우마를 견더내면서, 심장을 포함한 전체 시스템에 스트레스가 가해지기 때문에 때때로 치명적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앤디 워홀의 위대성에 기인하여, 예상 못 한 이른 죽음으로, 그의 부재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앤디 워홀을 기리며 추모하는 애틋한 심정으로 죽음의 이유를 밝히려는 이들의 노력은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것이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아티스트 앤디 워홀은 자신이 태어난 피츠버그 성 세례 요한 카톨릭 공동 묘지에 묻혀있다.

 

(참조:뉴욕 타임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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